7월 영화 단상(거대한 자유/생토메르/동년왕사/아문적나시차각)

블스에 올렸던 감상 조각을 모아서 조금 다듬어두기.

인어공주

7/1(토) 신주쿠 TOHO시네마
생각보다 좋았다. 보길 잘 한 거 같음.
솔직히 연출적으론 촌스럽고 각색도 크게 새로울 거 없고.. 나는 아주 어릴 때 빼곤 클래식한 디즈니적 세계관을 좋아한 적이 없는데(오히려 싫어한 편이었는데) 가끔 정말 오래된 얘기들이 왜 좋은지 얻을 게 있는지 신기하게도 확 이해가 될 때가 있다.
일단 할리 베일리가 노래할 때 목소리 그 자체를 듣는 겻만으로도 가슴 속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경험 가능.. 불순물 하나 없는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고 영화관 스피커로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에릭은 에리얼 역의 할리가 너무 뛰어난 가수이고 개성 뚜렷한 미인인 것에 비해 배우가 딱히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미남도 아니라 왜일까 했는데.. 쳐진 눈 댕댕이상 두툼한 몸에 선한, 멍청하고 부모 말은 썩 잘 안 듣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겐 자아 없이 끌려가는(..) 역에 딱이긴 하더라.
멜리사 맥카시의 우르슐라도 엄청 매력적이었는데 실사로 사람 상체에 문어 다리 달린 거 난 좀 무섭더라. 그치만 우르슐라 솔로 넘버인 Poor Unfortunate Souls 씬 좋았다. 세바스찬이랑 플라운더도 움직이는 거 보면 의외로 귀여운데, 세바스찬 너무 잘 익힌 색인 건 맞는듯..
마지막의 인종 뷔페적 장면은 아니 이렇게까지 짠 하고 펼쳐놓을 필요는 하고 좀 웃기긴 했지만.. 이 영화의 핵심 타겟이 되는 세대를 생각하면 앞으로의 모든 디즈니 영화는 이건 그냥 베이스가 되어야 한다. 얄팍한 피씨함이라곤 하지만 당장 이 영화 보고 나오니 굿즈 판매대에 있는 클래식 디즈니의 아리엘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놀라웠고 첫 인어공주가 이 영화일 아이들이 경험하고 배울 것들을 역시 떠올리게 된다. 인어고 인간이고 뭐고 굳이 특정 인종일 필요가 없는 거다 이 클래식에는.. 옆자리에 나이 많아봐야 20대 초반일 남자애들 둘이 앉아있었는데 나갈 때 아무 위화감 없었지 라는 얘길 나누는 걸 들으며, 대체 이 영화 개봉 전부터 그리도 난리였던 인간들은 대체 뭐에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 정말 이해불가한 일이란 것만 다시끔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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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자유

7/8(토) 시부야 분카무라 르 시네마
나중에 추가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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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토메르

7/15(토) 시부야 분카무라 르 시네마
확실히 굉장히 긴 진술씬에 피로해지긴 하는데 이해하기 힘든 인물을 다각도로 멀찍이서 다큐처럼 바라보게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성에 대한 변호사의 최종 연설이 매우 극적이고 감정적이라 오히려 툭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그 장면에서 직접적으로 논해진 모성과 법정에 있던 여성들의 반응에는 나는 이입하기 어려웠지만, 그 후에 마지막 장면인 라마가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다시 또 그 연설에 대한 복잡성이 더해지며 결코 모성에 대한 정해진 시선이나 답을 내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의견이 갈릴 작품인 것은 확실한 게, 다루는 주제 자체가 어렵기도 한데다 그걸 다루는 방식이나 연출이 굉장히 정적이고 이해를 돕는 장치들도 극도로 적어서.. 뭣보다 진술씬 정말 길어서 중간에 한 오분 정도 졸아버렸다. 감독 일본 와서 gv한다던데 그 회차에 못봐서 아쉽네. 소화 안 된 느낌이라 나중에 인터뷰라도 좀 찾아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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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왕사

대만거장걸작선2023 상영작
7/22(토) 신주쿠 K's 시네마
대만 영화 꽤 봤고 허우샤오시엔 영화도 꽤 봤지만, 부끄럽게도 동년왕사를 올해 대만거장걸작선에서 상영해준대서 이번에 처음 봤다. 연연풍진이 내 허우샤오시엔 최애작이었는데 동년왕사도 그만큼 좋아졌다.
확실히 한 집에서의 대가족의 풍경을 잡는 건 구도적으로도 그렇고 오즈의 그것을 많이 느끼게 하지만 일치시기 후의 중국도 일본도 아닌 그 역사의 중간지점이 은은하게 영화 전반에 녹아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 드리워있는데도 슬프지만 우울해지지는 않는, 현실의 삶을 과장 없이 뚝 떼어낸 영화가 끝나도 그 뒤의 비슷한 삶이 분명히 존재할 옛 영화들에는 늘 속절없이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여름 싫어 사람이고 늘 그렇듯 올해도 여름이 싫어서 진절머리 치고 힘들어하는데도 스크린 속의 여름의 이미지는 왜 이리 아름다운지. 대만 북부의 여름도, 남부의 여름도 다 아는 힘든 여름인데도.. ㅎ ㅏ..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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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적나시차각

대만거장걸작선2023 상영작
7/29(토) 신주쿠 K's 시네마
2016년 공개된 금마장의 역사와 대만의 역사를 엮어서 되짚는 다큐멘터리 <我們的那時此刻 The moment>. 영화사도 그렇지만 관련된 50~90년대의 대만사 되짚기도 꽤 충실해서 대만이란 나라 자체에 관심 깊은 사람에게 굉장히 봐둬서 좋을 만한 다큐였다. 나레이션 담당이 계륜미라 한층 더 좋은..
애초에 금마장이라는 이름 자체는 금색 말과는 큰 관계가 없는 금문도와 마조도라는 섬 이름의 앞글자에서 따온 이름으로, 초기 개최 때는 국가 주도로 영화 진흥과 장제스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수상자는 미리 발표되고 파티를 개최하며 기념했다고 한다.
금마장이 처음 개최된 60년대의 초기 대만 영화들은 당시 대만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신데렐라 연애 서사 혹은 애국심 고취를 위한 국책 프로파간다 영화들이 많았고, 그 후로도 홍콩 뉴웨이브에 밀려 수상권에 자국 영화들은 이 시상식에서 매우 고전해왔다.
지금의 영화팬들도 열광하는 허우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 같은 감독들의 현실적 대만을 묘사한 대만 뉴웨이브가 대만 영화 부흥기를 가져왔지만 대중 영화로써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다시 홍콩 영화나 일부 중국 본토 영화에 상을 내주는 등 침체기에 빠져들고, 2000년대 초에 와서야 겨우 양야체의 GF*BF같은 작품이 약진하며 약간이나마 숨통을 트게 된다. 그나마도 크게 살아난 것은 아니지만..
2014년에 제작된 다큐라 그 이후 18년도부터 심화된 대만과 중국 본토 영화인의 분쟁과 신경전이 다뤄지지 않지만, 어쨌든 잘 알려진 작품들 말고도 정말 대만의 고전 영화라 할 수 있는 60-70년대 작품들도 소개하고 꽤 오래 퀄리티를 유지해온 변두리의 대만 호러들이나 다큐들도 훑고 지나간다. 대만의 역사에 따라 여러모로 흔들려왔지만 어쨌든 대만, 홍콩, 중국 본토를 포함하고 이제는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의 영화들을 포괄하는 독특한 범주의 영화제로써의 금마장을 되짚는 재밌는 다큐다. 영화와 정치는 역시 떼어놓을 수 없다.
다큐에선 한국에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진옥훈 감독의 열대어나 러브고고, 20회 금마장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대만 뉴웨이브의 문을 연 진곤후의 소필적고사 같은 작품들도 짚고 넘어간다. 진옥훈 영화는 꽤 자주 일본에서 상영해왔는데 올해로 상영권 계약이 끝나는지 상영종료되고 당분간 영화관에 걸리긴 어려울듯? 열대어만 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차이밍량 영화와는 다른 90년대 대만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였다.
+) 대만 뉴웨이브가 내용이나 연출 자체도 너무 현실에 가깝고 유명한 인기 배우들을 기용하지 않아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데, 다큐에 나온 얘기로는 당시 제작비로 3-400만 대만 달러를 투자 받는데 유명 배우들의 출연료는 대충 200만 달러 선이었고, 그나마 타협해도 100만 달러였는데 프로덕션 측에선 만달러 정도 밖에 제시할 수 없었고 배우 측에선 그 금액은 뭐냐며 당연히 거절했다고..
그리고 에드워드 양에게 영화 수업을 받은 다이리런의 얘기도 나오는데, 강의 내내 뉴스 기사들을 읽게 하고 강의가 끝나기 전 막바지에야 기사에 대한 자기 의견을 정리해서 말하는 식의 수업을 했다고 한다. 정치나 사회와 영화를 분리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밀접한 것으로 여겼던 뉴웨이브 감독답고.. 2009년 금마장 감독상을 수상하며 다이리런이 전전년 사망한 에드워드 양을 수상 소감에서 울먹이며 언급할 때 허우샤오시엔을 비롯한 많은 영화인들이 눈물짓는 모습이 비춰진 것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