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9 단상

재택 근무를 시작한지 벌써 거의 3년이 다 되어간다. 홀로 자취 생활 10년 차인 사람에게는, 인터넷 회선 너머로 접하는 회사 동료들과의 회의나 짧은 잡담을 제외하곤 하루의 대화 상대는 편의점 직원 정도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도 최근엔 무인 계산대가 늘어 아예 대화가 없을 때도 있지만.

혼자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나는 뚝 떨어진 외딴섬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진하게 외로움을 느꼈지만 어떻게 새로 사람을 만나야 할지를 이젠 잊어버렸다. 이렇게 아예 타인과의 연결감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느끼는 일상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먼지 가득 쌓인 내 인간성을 툭툭 털어내어 거미줄을 걷어주고 외로움을 옅게 해줄 때가 있다.

원래도 라디오 듣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일할 때는 귀 기울여 듣는다기보다는 그냥 내내 주위에 쭉 흘려놓고 펼쳐놓는 느낌으로 라디오는 거의 일상복을 걸치듯 늘 나와 함께 했다. 항상 듣는 일본 라디오 채널이 있지만, 최근 오후에는 KBS 클래식 FM을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깝지만 아름다움을 듣는데 지식은 그닥 필요하지 않다 싶다.(물론 지식이 풍부하면 더 넓고 깊은 감상이 가능하겠지만..) 프로그램들 전부 차분히 가라앉은 느낌이라 언제 들어도 좋지만 그 중에서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전기현님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특히 좋아한다. 정확히는, 시작 멘트인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라는 말이 무척 위안이 된다. 누군가와 같이 지내는 사람들도 동거인 혹은 가족에게 ‘오늘도 고생 많았어’라는 말을 매일 듣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혼자 사는 사람은? 어쩌면 어떤 톡을 통해, 메신저를 통해, 아니면 sns를 통해 들을 수도 있겠지만 육성으로 그런 말을 매일 들을 수 있는 창구를 가진 사람은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타인이 늘 나를 위해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기분과 상태로 존재하고 나의 기분까지 살펴 그 말을 해주지는 않을테니까. 하지만 라디오를 통하면 이 말을 쉽게 획득할 수 있고, 매일 울리는 말이지만 가볍지는 않고 늘 진심처럼 들을 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 차분하고 정중한 말투로 평일 하루 가득 쌓인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주는 전기현님의 오늘 하루 수고하셨다는 이 멘트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야근이 남아있는 밤이라도 한 구획을 마감하고 가볍게 리셋한 다음 다시 마우스에 손을 얹을 수 있게 하는 힘을 얻는 느낌이랄까. 예전에는 라디오 디제이들의 고정멘트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잘 몰랐다. 하지만 이젠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평일 저녁 6시의 그 짧고 작은 위안을 기다리며 하루를 차분히 정리하는 법을 오늘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