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영화 단상(ing)

헤어질 결심(8/14)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
이제껏 박찬욱 영화가 취향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감상들 올라오는 분위기 보면 괜찮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극장에서 빨리 보고 싶었다. 막 몸서리 칠 정도로 너무 좋고 그렇진 않았지만 확실히 박찬욱 영화 중엔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해준을 향한 서래의 사랑을 절절하게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유머러스(?)하게까지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영화였네. 한 쪽의 사랑은 시작되고 한 쪽의 사랑은 끝나는 사랑이 엇갈리는 순간을 서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적 표현의 한국어로 알아채게 한 것이 참 좋았다. 한 가지 언어가 아니라 여러 언어가 교차하며 인물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말을 해도 소통이 되는 장면들을 좋아함.
피곤한 상태에서 봐가지고 기억이 흐릿한데 내년에 일본 개봉하면 한 번 더 스크린에서 보고 싶다. 자막 번역도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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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8/27)

@신주쿠 토호시네마
좋은 영화일 거라는 감은 왔었는데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조던 필 영화는 늘 기묘한 감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데 비슷한 방식의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세련된 것이 진짜 천재인 거 같음. 오즈의 마법사나 샤크 같은 헐리웃 고전들은 물론이고 아키라나 에바 같은 일본의 구 명작 애니들, 현실의 사건들까지 풍부하게 가져와서 비주얼적 이미지와 메시지를 은유하는데 모든 것이 영화의 주제에 딱 들어 맞게 배치되어 있어서 역시나 조던 필은 천재22222 말해 무엇하리오. 주제도 정말 시기 적절하게 오로지 쾌락 지향적이고 도덕성이 결여된 현대의 엔터테인먼트 제작/소비나 타 생명체를 향한 인간 태도의 오만함을 이렇게 지적이면서 무엇보다 넘 재밌게 표현할 수 있다니. 주인공 남매 둘도 조용하고 차분한 오빠와 찰진 랩 같은 언어 생활을 구사하는 외향적 여동생이라는 조합 너무 좋았는데 거기에 전형적 놈팽이 전기상 점원캐라 생각했던 엔젤까지 끼어서 세 명이 좌충우돌 우당탕탕 g쟌군을 상대하는 마치 고버 같은 느낌+영화 사랑맨들을 위한 온갖 영화 촬영에 대한 메타적 장면들 아무튼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영화가 맞긴 했다ㅋㅋㅋ
영화 자체가 고어나 점프스퀘어로 무섭다기보다는 좀 폐쇄 공포를 자극하는 장면이 있어서 그 부분이 좀 힘들었던 거 빼면 다 좋았다. 좀 더 나은 상영 환경에서 한 번 더 보고 싶기두.. 하지만 그 폐쇄 공포 자극하는 장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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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8/27 2회차)

@ 신주쿠 시네마칼리테
두 번째 보니까 여러모로 더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늘어나서 좋았다. 사실 2회차 보기로 결심한 이유가 영화 자체를 다시 보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삽입곡 플리가 너무 좋아서 정말 많이 들었고 그 곡들이 어느 장면에서 사용되었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는데 대체로 다 확인했지만 만족할 만큼(?) 음악 중심으로 즐기지 못해서 또 한 번 보고 싶어.. 그렇지만 이제 ott나 vod로 풀릴 때 까지는 못볼듯. 트윗도 썼었는데 율리에와 아이뷘이 파티에서 처음 만나고 파티하우스의 어떤 침실의 침대 위에서 즐겁게 얘기 나누는 장면에서 닫힌 침실 문 너머 파티장에 비지엠으로 Glamour Hammer의 Stay with me가 흐르는데, 누군가 침실로 들어오며 비지엠이 확 커지면서 "Stay with me darling I need you so much now Can't go on without you" 하고 후렴구가 나오는데 이게 정말 너무 좋아서 이 영화의 개인적 베스트 씬으로 선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타이밍 다 계산하고 맞춰서 찍은 장면이겠지.. 영화 속 헤테로 연애의 로맨틱한 장면에 마지막으로 설렌 게 오조오억년 전인데 정말 오래간만에 설레이는 느낌이었다.
율리에는 사실 영화에서 선택지로 나오는 악셀과 아이뷘 두 남자보다 자기를 너무 사랑한 거라는 얘기를 봤는데 나도 동의하고.. 물론 두 남자도 당연히 사랑했으니 동거도 하고 오래 연애 했겠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거기서 오는 허무감과 빈 부분을 메우고 싶은 타이밍에 딱 적절하게 사랑에 빠지고 연애로 그 부분을 채워버린.. 하지만 원래 연애로 채워야 할 부분이 아니었으니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다시 혼자인 상태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걸로 교훈을 얻었고 그런 건 아니고 사실 율리에는 언제든 다시 비게 되고 타이밍만 맞으면 또 다시 연애로 빈 부분을 채울 거 같긴 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그냥 그게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사람의 삶이니까.